[신간서적]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일본 열도 기행
[신간서적]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일본 열도 기행
  • 손영우 기자
  • 승인 2019.02.14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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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실크로드 도전기’에 이은 일본 근대화의 현장 톺아보기

비행기나 관광버스를 타고 며칠 지나치면, 일본은 우리보다 별로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아시아 국가다. 고층빌딩도 많지 않고, 건물은 낡고 도로는 좁아 보이기만 한다.

과연 그럴까? 일본은 넓고 큰 국가였다.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도쿄까지 1,500Km, 홋카이도 북쪽 끝 와카나이까지는 장장 2,800km의 거리이다.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서 36시간, 신칸센열차로 24시간 소요된다. 오키나와와 태평양의 섬을 포함하면 4천km로 상상을 초월하는 영토이다. 인구 1억3천만 명에,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라는 객관적 사실은 일본이 내수에 기반을 둔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19세기 초 외침으로 무너져 내리는 중국의 현실을 보며 고뇌하던 일본의 지도층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예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느슨한 형태의 중앙집 권제가 사쓰마 조슈 지방 영주의 힘과 야망을 키워준다. 그들의 보호로 하급 사무라이들이 꿈을 가지고 국가 변혁에 앞장서게 된다.

기득권을 가진 도쿠가와 막부나 그들과 맞서던 하급 사무라이도 결국 서양의 힘에 압도되며

개혁 개방에 힘을 합치고, 효율적 국가체제와 헌신적 관료로 변신한 사무라이가 30여 년 매진한 산업화와 근대화는 결실을 얻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현지에서 경험한 일본 근대역사에는 충의라는 국가정신과 국민의식이 흥건히 배어 있었으며

현재도 생생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보다 근대화도 빨랐고, 경제 기술 교육 등 전반적 분야에서 강국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한마디로 “얄밉지만 뛰어난 이웃”이다. 감히 말하건대, 미국 유럽에서 배우듯이 가까운 이웃 일본에서 그 정신과 기술을 열정적으로 다시 이해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일본을 바르게 알고 배워, 일본을 극복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2016년 봄, 평생 꿈꾸던 실크로드 답사를 천신만고 끝에 마칠 수 있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멀고, 파미르의 산은 험준했다. 이후 여러 사람이 물었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정했습니까?” 자신 있게 ‘미국 대륙 횡단’과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이라고 답했다. ‘초강대국 미국의 독립사’와 ‘제국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사’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실크로드 전국 강연을 다니며,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약소민족의 흥망성쇠(興亡盛衰)”라는 새로운 담론에 사로잡혔다. 동양의 종주국 중국, 그 주변국 중 단일민족이 독립적으로 국가를 이루고 생존한 경우는 한국과 일본, 베트남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에서 세 민족은 강인하고 우수한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한민족, 베트남족 모두 19세기 말에 외세의 침공에 쓰러지고, 쓰라린 투쟁을 거쳐 2차대전 이후에 우여곡절 끝에 부활한 신생국이다. 일본 민족만큼은 쓰러지지 않았다. 일본 민족은 아시아에서는 참으로 예외적인 경우다. 섬나라(列島)라는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외국의 침략을 당해보지 않았고 독립을 유지해 왔다. 실크로드 여행 중에 중국인, 중앙아시아인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다. “야폰스키(일본사람) 이냐고?” “카레이스키(한국인)이다!”라고 답하면 매우 놀랍고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저들에게 한국보다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훨씬 가까이 있었다.

일본은 접근성이 좋아 답사계획을 짜는 것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자동차나 철도로 한 번에 종주할 필요가 없었고, 수시로 출발하는 것이 가능했다. 3월부터 시작해 11월까지 1달에 1회 4박 5일 정도로, 7~8회 서울에서 출발 후 복귀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규슈(九州), 야마구치(山口), 교토-오사카(京都-大阪), 도쿄-요코하마, 동북 - 홋카이도 순이었다. 동북 홋카이도 지역은 9월 지진이 발생해 일정이 취소 되었고, 도쿄 일원을 다시 방문하였다. 단풍이 절정인 11월 가고시마 남태평양 앞 바다, 오키나와를 거쳐온 거센 파도와 강풍이 밀려온다. 일본은 어떻게 저 거센 근대화의 파고를 넘어섰을까?

여러 학자와 논객들이 말하고 있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은 사무라이를 중심으로 근대화에 성공했고, 우리는 쇄국정책으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 한다. 단지 그 원인뿐일까? 메이지유신과 근대화를 현장에서 들여다보면 이 문제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해서 나는 검은 바다 현해탄(玄海灘) 상공을 건너 일본으로 향하게 되었다. 남쪽 끝 오키나와에서 북방 홋카이도까지 여행하며, 일본의 근대 인물과 자연, 역사와 정신, 시장과 상인을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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